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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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문화의 뿌리
Date :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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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출판사다. 하지만 1984 전용훈 대표는 출판의 의미를 꼭 종이에만 한정 짓진 않는다. 에디터 김재진 사진 최모레

 

 

#1984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을 위해 1984를 소개해주세요.

1984는 책을 만드는 출판 브랜드이자 저희가 편집하는 공간이에요. 1984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영향을 받아 문화적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나아가 우리의 문화적 자생을 위해 움직이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홍대에 위치한 1984 공간에 대해 설명해 드리면, 크게 에디팅 스토어, 뮤지엄, 카페로 구성되어 있어요. 국내외 다수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에디팅 스토어는 단순한 판매를 넘어 브랜드 프레젠테이션과 같은 방법으로 그 브랜드가 담고 있는 생각과 철학, 이야기까지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뮤지엄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책들을 전시하는 것에서부터 갤러리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작가들이 직접 작품의 취지를 이야기하는 장으로 활용되기도 해요. 그리고 카페는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고 소통하게 하는 공간이죠.

 

출판사가 이런 문화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신기해요. 1984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희 집안은 3대째 출판을 하고 있어요. 외할아버지는출판 태동기’, 아버지는출판 부흥기’, 저는출판이 어려워지는 시점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는 전국의 서점들이 호황일 때 출판사를 운영하셨어요. 저는 그곳에서 영업부 일부터 시작하게 됐고요. 제가 들어갈 때는 출판이 막 어려워지는 시점이라 거래처 서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밤에 자다가 연락받아 가보면 밤새 서점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죠. 저희 책도 돌려주지 않고 정산도 안 된 상태로 부도가 나서 피해도 많이 입었어요. 이렇게 서점들이 사라지는 걸 보며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온라인 서점은 저희가 책을 가져가도 어떻게 하면 이걸 독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잘 팔리는 책을 골라내는 데만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출판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 출판사가 직접 독자를 확보해야 살아남는다는 결론을 얻었죠. 출판사가 단지 책으로만 승부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네이버, 구글에게 대체될 테니까요. 출판사가 잘하는 건 정보를 가공하는 지식 서비스인데 이런 걸 바탕으로 제조업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책 이외에도 독자들에게 브랜드, 제품, 음식, 공연까지도 한 공간에서 편집하여 보여줄 수 있다면 지금 시대에도 독자와 계속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이라는 거 자체가 워낙 오랫동안 비슷한 형태로 이어져 오다 보니 출판은 좀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집안에서도 반대가 꽤 있었을 거 같아요.

부모님과는 세대 차이도 나고 출판을 겪은 환경도 무척 달라서 처음에는 이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국내에는 아직 이런 게 없었고 해외에도 많지 않았던 터라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 고민도 나누고 공부도 많이 하려고 했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저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 거 같아요. ‘출판사가 이런 공간을 왜 만들어?’란 생각 대신이런 공간은 출판사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확신이었죠.

 

아무래도 사람들에게는 카페가 가장 익숙한 개념이다 보니 1984를 카페의 하나로 인식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원래 커피에 대한 관심도 많으셨나요?

제게 있어 좋은 카페는 커피의 맛은 기본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커피라는 거 자체보다 공간의 본질에 관해 관심이 더 많았죠. 생텍쥐페리가 글을 썼던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커피 맛이 좋기 때문은 아니니까요. 물론 카페를 위해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은 기본이죠. 결국, 1984 공간은 에디팅 스토어와 뮤지엄, 카페가 하나가 되어 편집된 종이이자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처럼 공간을 편집한다는 말이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와요.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1984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편집은 프랑스어로 곧 출판을 뜻해요. 그만큼 출판 분야에서 편집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굉장히 정교하게, 완전한 하나의 형태로 묶여야 하는 거니까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편집숍은 사실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정도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희는 물건을 가져다 놓고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들었는지에 대해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왔어요. 브랜드 프레젠테이션도, 공연도 그래서 하는 거고요.

 

 

 

# 3

 

1984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어떤 점을 배웠나요?

3대가 출판을 업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재밌게도 각각 출판을 바라보는 관점과 다루고자 하는 콘텐츠가 달라요. 외할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기자 출신이에요. 1951년도에 희망사를 창립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잡지를 출간하셨죠. 기자 출신이시다 보니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언론인으로서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죠. 외할아버지는 제게지금 출판계가 어려운 건 전달해야 할 신념을 잃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한마디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시와 문학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형제가 많으신데 중고등학교 때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셔서 아버지와 고모만 학교를 쉬어야 하셨대요. 그때의 서러움과 갈증을 시와 문학을 통해 치유하셨던 거죠. 그러다 나중에 출판계에서 영향력 있던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배우며 어머니도 만난 거예요. 이후에 외할아버지의 회사는 어려워졌고 아버지는 따로혜원 출판사를 만드셨어요. 아버지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욕심도 없고 순수한 분이에요. 제가 처음 혜원 출판사에 들어갔을 때는 아버지의 순수함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광고를 크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가 계속 나오는 것도 아닌데 혜원 출판사가 추구하는 가치라는 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긴 하는 걸까?’란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한 독자분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 됐어요. 브랜드라는 것이 구태여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본질을 지키는 당당함이 있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사람들은 알아준다는 것을요.

 

같은 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이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 업에서 상당한 결과물을 만든 완성된 분들이지만 본인은 한참 성장해 가야 하니까요.

2세대는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무게감이 크게 느껴져요. 저는 그게 일종의 트라우마였어요. 다른 직장인들이 가진 스트레스 대신에 제가 가져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출판계에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각각 이룬 업적이 있으니 저도 그 이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어려운 분야를 아버지가 어떻게 계속 잘 해오셨을까?’란 존경심이 더 크게 느껴져요. 존재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런데 다른 분야도 많은데 굳이 출판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이 가깝긴 했지만, 다독을 하진 않았어요. 아버지 사업에 대해서도문화사업이고 좋은 일이다.’ 정도로만 생각해왔죠. 그런데 군대에서 책을 정말 많이 읽게 되면서 책이라는 게 정말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저는 관심 분야가 참 다양했는데 책에는 그런 것들을 다 담을 수가 있고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완전히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모든 물건은 한계가 있는데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죠. 제가 가진 다양한 분야의 관심을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1984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해요. 전자책과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이 더는 종이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살아남는 책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종교를 봐도 결국 남아있는 건성경이잖아요. 사람들은 사라져도은 남아있어요. 그런 의미에선 제게 책은 일종의이에요. 배터리가 꺼지면 사라지는 전자책이 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이 상품화되는 건 불가피해진 시대 같아요. 사람들이 이미 책 안에 담긴 내용을 너무나 다양한 곳에서 쉽게 소비하고 있어 책을 느리고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이럴 때일수록 깊이 있고 정교한 책들이 나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요. 유통사를 논하거나 환경을 이야기하기 전에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만드는 것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생각하죠.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는 아버지와도 함께하셨던 분이 계신가요? 그러면 사이가 좀 어색할 것도 같아요.

저희 편집장님은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시며 제게 과자도 사주고 저와 놀아주던 누나였어요. 이제는 제게 웃으며 말씀하시지만, 처음에는 머리가 빠지실 만큼 스트레스가 크셨다고 해요. 아무래도 아버지와 저는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다루는 분야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 덕분에 1984는 전통적인 가치와 기술 위에 새로운 걸 조화롭게 얹을 수 있는 출판사가 됐다고 생각해요. 역할에 대한 어색함을 극복하는 건 서로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고집이 세서 저보다는 편집장님이 더 힘드셨을 거예요. (웃음)

 

 

# 편집

 

전시와 공연, 강연 등이 이제는 조금 흔해졌어요. 많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죠. 1984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기획을 하시나요?

이러한 것들이 상당히 많아졌죠. 저는 이 바탕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사회 흐름에서 이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이유를 끄집어내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브랜드를 만드는 분들도 어찌 보면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분들은 자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부분은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편집자로서 작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전시 개요를 잡으며 어떤 이유에서 무엇을 전할 것인가에 집중하려고 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국 편집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게 되는 데 좋은 편집자란 뭘까요?

좋은 편집자의 태도는유리같은 거 아닐까요? 유리는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 지어주는 분명한 역할을 하지만 투명해서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편집자도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지만 크게 드러나진 않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해요.

 

많은 출판사가 종이책의 어려움에 대한 대안으로 전자책을 생각하는 거 같아요. 1984도 전자책에 대해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출판사의 대표로서 전자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경제, 경영 분야처럼 읽고 소비하는 책은 지금도 전자책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아트북이나 문화 예술 분야의 책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큰 기술 진보가 먼저 있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해요. 종이보다 원작의 가치가 많이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책을 산다는 것, 책을 서가에 꽂는다는 것의 가치를 크게 만드는 쪽에 집중하며 책을 만들고 있어요. 내용이 중요하지 그걸 담는 그릇은 언제든 시장이 무르익으면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먼저 나서서 미래를 예견하고 투자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최근에는 라이프 스타일이 대세라고 하잖아요. 보통 편집숍 하면 아직은 다양한 브랜드의 옷들을 모아 놓은 패션숍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1984는 상당히 빠르게 패션 이외의 음악, 리빙 소품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숍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라이프 스타일 제품이란 게 예전에는쓸 데 없는 물건으로 여겨졌던 것도 같아요. 저는 예전부터필요한가? 아닌가?’를 떠나서순수한 도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관심이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 유행과 맞물린 것 같아요. 지금의 사람들이 라이프 스타일 제품에 관심이 있는 건 그만큼 물건에 대한 필요성 이외에 다른 욕구가 늘어가고 있다는 말이겠죠. 하지만 저는 우리나라 문화 안에서 라이프 스타일 산업의 한계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건을 산다는 건 자기 취향을 드러낸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홈파티 문화가 없잖아요. 자기 혼자 즐기기 위한 향과 그림, 소품 등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단계에서는이케아만으로도 사람들의 욕구를 꽤 채울 수 있다고 봐요. 앞으로 이 분야가 폭발적으로 더 성장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1984와 개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궁금해요.

가볍게 공간에 대해서는 2층을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지만, 현재로써는 엄청난 미래의 계획은 없어요. 이 공간이 시간을 통해 가치를 증명해나가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행복이 목표예요. 고도원의 꿈 너머 꿈을 가지란 말을 좋아해요. 의사가 되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의사가 되면 되지만 꿈은 그걸 넘어서 의사가 되어 사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까지 생각하는 게 진정한 꿈이라는 말이죠. 저는 행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제 꿈인데 그 도구가 결국인 거예요. 사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1984를 시작하기 전인 20대 때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현재에 집중할 때인 것 같아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지금을 돌아보며 다시 발전해가는 시간을 갖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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