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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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존재하기
Date : 2015-10-07
Name : File : 2015100712570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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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 <사진작가>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해요.

저는 사진작가 안준입니다. 사진 매체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의 대주제는 사진의 초월성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빨리 지나가는 사건들, 카메라만이 포착할 수 있는 순간들에 관심이 많아요.

 

사진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것 같아요.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을 쓰게 했는데, 화가라고 적었거든요. 아마 생각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게 살게 되리라고는 몇 년 전만 해도 몰랐었어요.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미술 시간에 그런 아이들 있잖아요. 열심히 하는데, 옆에 짝이 볼까 봐 손으로 가리고 그리는. 그림이 좋은데, 제 그림을 남한테 보여주는 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십 대 때 이걸 좋아하지만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시각 예술 분야가 좋더라고요. 내가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는 것도 즐겁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미술사학과에 진학했어요. 원래 꿈은 뮤지엄 큐레이터였거든요. 여름 방학 때 상하이 아트 뮤지엄에서 인턴을 했는데, 상하이 비엔날레 오픈 전날 작가들이 바닥에 놓인 자기 작품을 살펴보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작업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저한테 맞는 매체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수업을 들어봤어요. Drawing 1, Sculpture 1, Ceramic 1, 이런 식으로 많은 매체의 기본 수업을 들어봤어요. 마지막 학기에 마지막 수업으로 들었던 과목이 바로 사진이었죠. 사진이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사진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사진이 현실의 증명인데, 그중에 내가 관찰하지 못한 순간이 껴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어요. 또 그 당시에 저는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집에서 책만 읽다 3일 동안 방 밖에 안 나갈 때도 있었고요. 제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카메라를 들면 자리에서 렌즈로 당겨서 볼 수 있는 게 많잖아요. 처음에는 현실을 훔쳐볼 수 있다는 관음적인 면이 매력적이었어요. 졸업하고는 사진을 해야겠다 싶어서, 6개월 동안 별 주제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진만 찍었어요. 그게 천 장 정도 되더라고요. 그중에서 스무 장을 추려서 대학원 원서를 넣었어요.

 

갑자기 진로를 전향하셨는데, 쉽지 않은 도전이셨을 것 같아요.

사실 뉴욕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고 나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저는 사진을 처음 시작한 거였는데, 다들 너무 잘 찍는 거예요. 현대 미술은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잖아요. 저는 어떻게 보면 운 좋게 대학원에 붙은 거였는데, 다들 사진과 출신이 많더라고요. 저만 뭐가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고요. 학교에서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배워야 하는데 원하는 게 딱 나오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긴 한데, 정말 이게 맞는 길인가 싶고. 또 뉴욕은 시끄럽잖아요. 밖을 보면 사람들이 저 빼고 다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즐기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무렵에는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는 생각만 했어요. 친구들은 벌써 결혼도 하는데, 저는 파트타이머로 일하면서 부모님께 생활비 받아 쓰는 대학원생이었고요. 하고 싶던 공부를 하고 있긴 했지만 미래가 보이는 직업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불안의 연장 선상에서 self-portrait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또 당시 제가 살던 스튜디오가 되게 작았어요. 한쪽 벽에 큰 창이 있었는데, 서향이었거든요. 낮에는 빛이 온 방 안을 뒤덮곤 했는데, 꼭 오븐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럴 때는 옥상 올라가서 바람을 쐬곤 했어요. 매우 더운 여름 어느 날, 바깥 풍경을 보는데, 갑자기 그게 미래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사람들이 풍경을 볼 때 바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실체는 사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죠. ‘눈앞에 있는 게 눈앞에 있는 게 아니라면, 내 눈앞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면서 밑에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허공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꼭 현재를 본 것 같았어요. 당시에 ‘내가 후회를 하든 하지 않든,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문득 ‘그렇다면 현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사이의 짧은 허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집으로 뛰어 내려가서 카메라를 가져왔죠. 그때 제가 서 있던 자리에서 현재를 찍는다는 느낌으로 셔터를 눌렀어요. 제 사진에서 제 몸을 빼면 평범한 도시 풍경인데, 제 몸이 사진에 개입함으로써 사진에 긴장감이 생기잖아요. 그런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작업 과정이 꽤 위험했을 것 같아요. 촬영 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당시에는 걸을 때 옥상만 보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제 아파트에서 시작했지만, 길을 걷다 보면 제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건물들이 있거든요. 그럴 땐 그냥 올라가 봤어요. 가 봐서 옥상 출입문이 잠겨있으면 포기하고, 열려 있으면 가서 사진을 찍었죠. 처음에는 카메라가 두세 번 넘어져서, 그다음부터는 친구와 엄마가 도와줬어요. 재촬영이 어려우니까, 맑은 날 가장 빠른 셔터스피드로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고 내려왔어요. 어느 날은 너무 무서워하는 바람에 사진이 잘 안 나왔을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고속 연사 촬영 컷 중 한두 장은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사진이 있더라고요. 사진이라는 것은 현실의 기록이자 관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의 이미지로 현재의 문맥을 전복하는 힘 또한 있다는 걸 느꼈죠.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요?

헤럴드 에저튼이요. 'Bullet Throw Apple'이라고, 총알이 사과를 통과하는 유명한 사진 있잖아요. 이 사진을 보고 전율을 느꼈었어요. 그 사진 때문에 처음으로 사진 수업을 듣게 되기도 했고요. 사실 이 분이 작가라기보다는 과학자시거든요. 과학적인 현상 속에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사과가 미술사적으로 상징하는 바가 많기도 하고요.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또 잭슨 폴록을 좋아해요. 잭슨 폴록은 미술사적으로 퍼포머로 기록이 되거든요. 액션 페인팅을 통해 수많은 움직임이 한 화면에 표현되잖아요. 그게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라는 면에서 좋아하기도 하고, 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나요?

사진이 기록의 매체이기 때문에, 보통 사진작가는 어떤 현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관찰의 산물을 의도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게 작업의 원천은 호기심이에요. 사람의 눈은 셔터 스피드가 30분의 1초밖에 안 된다더라고요. 요즘 DSLR 8천분의 1초까지 찍을 수 있어요. 저는 물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갈지, 아니면 분수나 폭포가 떨어지는 순간에는 어떤 형상이 만들어지는지 그 디테일이 늘 궁금해요. 그래서 그걸 카메라로 찍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죠. 제 사진의 공통된 점은 매우 빠른 셔터 스피드로 많은 사진을 연사 방식으로 찍는다는 것이에요. 또 그중 굉장히 한정적인 프레임을 골라서 프린트하고요.

 

사진 예술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퍼포먼스 아트는 시간성이 바탕이 되는 작업이잖아요. 그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없고, 사진과 비디오로 남은 기록을 통해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전후 관계를 추론하는 거죠. 하지만 사진이라는 게 현실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기록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굉장히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사진은 아주 평온하게 나온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렇게 실제를 전복시키는 기록이 있는데, 그걸 바탕으로 관객들은 있지도 않은 스토리를 추론할 수 있어요. 제 사진은 퍼포먼스의 기록이지만, 사실 그 퍼포먼스는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예요. 이렇게 현실과 반대되는 특성을 가졌다는 점이 사진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작업 소개 중 ‘사진은 진실이자 거짓이며 현실이자 환상이다’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 이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현상이나 우리의 존재 같은 모든 것들이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 같아요. 현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짧은 허공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허공이 무한히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완성되는 거잖아요. 그중에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죠. 예를 들면 사람의 눈으로 강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평생 다시 못 볼 아름다운 순간이 강의 흐름 속에 존재했다가 사라졌을 수 있거든요. 저는 끊임없이 그런 걸 찾아내고 싶어요. ‘아름다운 장면이 있는데 그걸 내가 보지 못했다면 그것이 있었던 걸까, 없었던 걸까?’ 하는 굉장히 모순되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 모순을 이어주는 게 사진인 것 같아요. 실제 있었던 순간을 담지만, 그게 제가 봤던 게 아니거든요. 우리의 인지 너머에는 사실 수많은 사건이 존재하잖아요. 우리가 보는 건 가시광선의 범위 내로 한정되고, 그 안에서도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제가 부지런히 찍어주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는 거고요. 저는 물의 움직임, 바람, 떨어지고 깨지는 현상들과 그 안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아요. 작업을 통해 그런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는 예술과 삶 사이에 경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 경외감을 늙어서도 잃지 않았던 작가로 남고 싶어요. 제가 죽고 나서도 이미지는 남으니까,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죽어서도 누군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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