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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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불편함 속에 느림, 슬로우 라이프
Date : 20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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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 (르농장 운영)

 

 

서울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강원도 양양은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여섯 가구가 사는 양양의 작은 마을에서 블루베리를 키우며, 쉬는 날엔 도예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시간을 보내는 그녀가 산다. 그녀가 사는 120년이 족히 넘는 목조 주택에는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아궁이가 그대로 남아있고, 곳곳에는 그녀의 취향이 담긴 책과 도예 작품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따듯한 차를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귀촌 1년 차 그녀의 슬로우 라이프.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 무작정 떠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귀촌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왔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오랫동안 조경 사업을 하다가 블루베리로 업종을 바꾸게 됐어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디자인적인 부분만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패키지라든지 명함 같은 것들을 조금씩 도와드리다가 작년부터 블루베리를   수확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땅 밟는 것도 너무 좋고, 강아지들이랑 노는 것도 좋고, 푸른 것들을 보니까 스트레스가 없어지더라고요. 모든 일이 그렇듯 일적으로 힘든 게 있어도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일과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가 있잖아요. 그냥 이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제 개인 작업 하면서 살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 큰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곳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패션 바잉 MD 일을 했었어요. 그 일도 재미있었는데 매일 신사동에 핫플레이스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까 숨이 좀 막혔어요.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타인의 시선에 대해 되게 의식하게 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염증이 생기면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원래 저는 소위 말하는 그냥 명품 좋아하는 여자애였어요.(웃음) 강남 안에서는 모든 게 해결되잖아요.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불과 10m 안에 모여 있으니까 신사, 압구정만 주로 다니는 애였죠. 그러다가 이태리로 유학을 가게 됐는데, 인터넷 설치부터 시작해서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까지 모든 게 한 달이 걸리는 거예요. 근데 그러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되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아요. 그런 여유롭고 느린 삶에 적응해서 살다가 다시 서울에 오니까 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제 개인 작업 하면서 작가들끼리 핸드메이드 마켓 같은 걸 정기적으로 열다가 우연찮게 아트와 패션이 결합된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회사생활 하면서 제 작업을 하고 싶어서 퇴근하고 공방을 다녔어요. 그러다 그냥 무의미하게 취미생활로 공방을 다니면 안될 것 같아서 공방 다니면서 나온 결과물로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리고 제 브랜드를 할까 고민하다가, 어머니께서 도와달라고 하셔서 작년부터 농장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농장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강원도 양양까지 오시게 된 거예요?

원래 농장 일을 하던 안산이라는 지역이 개발되고 있는 추세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땅을 정리하고 좀 더 친환경적인 곳을 찾게 됐어요. 처음에는 경기도 쪽으로 많이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알아보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양양에는 연고가 전혀 없었고, 강원도 인제 쪽에 저희 외삼촌과 이모님이 살고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었어요.

 

안산에 계시다가 강원도로 이사 오신 지 이제 석 달 정도 되셨는데, 어떠세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저희가 수리를 하며 들어왔기 때문에 집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까 이제는 괜찮아요. 그리고 강원도 자체는 좋은 것 같아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여름만 되면 강원도로 피서를 왔거든요. 너무 몰랐던 장소로 온 건 아니니까 이곳이 편하고 좋은 건 확실히 있어요. 그런데 여기가 보셨다시피 주변에 아무것도 없잖아요.(웃음) 근처에 슈퍼도 없고, 식당까지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하고, 버스도 하루에 세 대밖에 안 다니죠. 그런 부분만 빼면 좋아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하셨는데, 어떠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저도 한참 배우는 단계라 아직 어떻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농사일 자체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근데 꽃 피울 때랑 수확할 때의 보람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안산에 있을 때도 동네 분들이 그냥 도와주시더라고요. 따는 게 재미있다면서요. 그런 수확의 재미가 확실히 있어요. 작년에는 농장 로고랑 패키지 디자인을 하면서 농사일을 겸했어요. 낮에는 블루베리 따고, 저녁에는 패키지 디자인을 했죠. 전날 들어온 주문 체크해서 다음날 오전에 수확을 하고 오후에는 택배사가 오기 전에 포장을 하고, 그걸 거의 석 달 정도 반복했어요. 근데 어떤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잡일이 많잖아요. 이건 농사일 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판매는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하시나요?

작년에는 블로그랑 방문해주시는 분들 위주로 판매를 했는데, 처음 한 것치곤 반응이 좋았던 편이에요.

 

요즘엔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도 많잖아요. ‘도시농부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물론, 도시에서도 충분히 농약 치지 않고, 텃밭을 가꿀 수 있지만, 저희는 어쨌든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와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좀 더 편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모시고 싶어 오히려 제가 이쪽으로 오자고 했죠.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큰 모험인 거고, 지금도 모험 중이에요.(웃음)

 

바쁘게 살았던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에서 슬로 라이프를 시작하셨는데, 가장 변화한 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는 삶이 있잖아요. 그러면서 편리한 부분을 놓지 못하죠. 저도 20대 후반까지 그걸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물질적인 것들과 경제적인 부분, 그리고 편리함을 놓지 못해서 내면에서 자꾸 부딪히는 거죠. 불편함 속에서 느림을 선택하느냐, 편리함 속에서 빠름을 선택하느냐 확실하게 어떤 삶을 선택할지 고민이 컸던 것 같아요. 근데 아마 서울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보통 도시에 사는 분들이 머리 식히러 시골에 오시잖아요. 저는 숨통 트이러 한번씩 서울에 가려고요.(웃음)   

 

내가 먹을 음식의 재료를 직접 가꾸고 재배하는 일이 많은 보람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저희가 농장을 하면서도 텃밭은 계속 있었거든요. 그래서 채소들은 거의 사먹지 않고 늘 저희가 해서 먹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먹는 건 농약 안 치고 유기농으로 먹으면서, 판매하는 건 대량 생산을 위해 농약 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건 제 가치관에 부합되는 일도 아니고요.  

 

시골에서의 삶이 지루하진 않으세요?

이곳에 있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집 정리하고 농장 일을 보고 다시 돌아와 밥 먹고, 정리하면 벌써 하루가 다 가죠. 서울에서는 뭐가 잘못되면 관리실에 전화하면 되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죠. 하나하나 정리하려면 바빠서 지루할 새가 없어요. 이번에 이사 오면서 TV를 외삼촌 네 드렸어요. 제가 TV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근데 TV를 보다 보면 은근히 죽이는 시간이 많잖아요. TV를 보게 되니까 책 보거나 작업하는 시간을 그만큼 갖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이번에 없앴어요.

 

농장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스케치 작업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농장에 개가 세 마리나 있어서 산책시키면서 놀기도 하고요.

 

이곳 생활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되게 소소한 건데, 애들(강아지) 산책시킬 때. 애들이 막 뛰어다니는 모습 보면 너무 행복해요. 농장 뒤쪽에 계곡이 하나 있는데, 계곡에서 애들 산책시키면서 걔네 모습을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되게 행복해요. 커가는 자식 보는 것 같이.(웃음)

 

이곳 생활이 외롭진 않으세요?

제가 의외로 외로움을 잘 안 타는 성격이라 이곳 생활이 외롭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힘든 부분

을 굳이 꼽으라면, 제가 맛집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런 음식들을 못 먹으니까 때론 슬프기

도 하죠.(웃음) 근데 워낙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발전되어 있어서 웬만한 숍들은 다 온라인을 갖고

있잖아요. 택배도 하루 만에 오고 그러더라고요. 진짜 이건 한국의 힘이야.(웃음) 그런 부분이 있

었기 때문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10년 전이었으면 못 왔을지도 몰라요.(웃음)

 

주변에 귀농이나 귀촌하신 분들이 좀 계세요?

있으면 좋을 텐데 없어요.(웃음) 왜 일본 영화에서 보면 귀촌하시는 분들 중에 빵 만드시는 분들이나, 개인 작업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양평 쪽에는 공방이나 도예 쪽 하시는 분들이 꽤 모여 계시긴 하는데, 양양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곳이 좋은 게 바다가 차로 25분밖에 안 걸려요. 귀촌 생각하시는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도시 생활이 가장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요?

도시에는 동네 친구들이 있잖아요. 집에 있다가 잠옷 바람으로 만나서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수다 떨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걸 못 하게 되니까 그런 게 가장 그립긴 해요. 친구들이 여행으로는 오는데 살러 오라고 하면 절대 안 오네요.(웃음)

 

귀농이나 귀촌을 준비하고 계신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굉장히 신중해야 해요. 그리고 이왕이면 연고지가 있는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지 않으면 처음에 터 잡는 게 쉽지 않거든요. 요즘 부작용이 귀촌이나 귀농을 했다가 정착하지 못 하고 다시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시골 분들도 새로운 사람이 오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신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내가 여기서 잠깐 살다 가겠다 싶으면 아예 안 하는 게 낫고, 평생 시골에서 살겠다는 확신이 들면 오랜 기간 들여 꼼꼼하게 알아보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아요. 그냥 농장 운영하면서 조금씩 제 작업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가끔 친구들도 초대하면서. 유명하게 살고 싶다거나,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20대 때는 뭣도 모르고 꿈만 거창했어요. 제가 처음 이태리 유학 갔을 때, 티파니 수석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어요.(웃음) 근데 30대가 되고 나니까 그런 것들을 조금씩 덜어내게 되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부를 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고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을 알고 그걸 깨닫는 사람들이 거기서 충분히 행복을 얻으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제 가치관에 더 부합하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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